누군가에게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글쎄요,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그렇군이었습니다. 별 감흥이 없었죠. 적어도 제게는.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패미컴~슈퍼패미컴 시대 이래의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성가를 구가하고 있는 닌텐도의 게임과 게임기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그 성가의 천분지 일도 제대로 발휘 못하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며, 그건 닌텐도 게임(및 게임기)의 팬들에게는 더없이 마뜩찮은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닌텐도 팬 중에는 과거 제 1차 닌텐도 전성기 시절부터 게임에 입문하여 즐겨온 비교적 코어한 게이머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실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유통사인 D모 사(아니, 이제는 K모 사려나)에게 돌을 던집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통사의 잘못도 잘못이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닌텐도 스스로가 굳이 자사의 게임을 한국에서 팔리도록 꾸며 일부러 내놓아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는 느낌입니다.
역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런 닌텐도가 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꾸고 한국에 한글화로 게임을 파는 (꿈만 같은) 상황이 벌어지도록 할 수 있는 지름길은 있긴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쉬운 길이 말이죠.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힌트는 이때까지 읽으신 글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닌텐도 아닌 다른 회사의 게임기(가령 PS3)가 몇백만 대 단위로 팔려나가고, 그 회사의 게임기로 수십만 단위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히트작이 줄줄이 나오는 시장을 만들어 보여주면 됩니다.
이를 약간 오버해서 꾸며 보면,
SCE의 게임기가 대성공을 거두는 시장이 되면, 닌텐도가 정식으로 지사를 세우고 한글화 게임을 낸다
...는 식의 전개가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닌텐도는, 적어도 해외 시장 개척 의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독하도록 보수적이고 또 신중한 회사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비디오 게임 관련사 중 가장 막대한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임에도 그러합니다.
"오락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뿐"이라는 야마우치(山內) 전 닌텐도 사장의 유명한 한 마디가 상징하는 대로, 한 번 무모하게 발을 잘못 딛으면 곧바로 엄청난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업계의 원로인 닌텐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번다는 회사가, 막대한 환차손과 저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세계적인 기업으로서는 비정상적이라고 불릴 정도의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현금보유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그런 닌텐도 특유의 불안감 정서를 잘 보여줍니다. 언제 잘못될지 모르는 게임의 세계에, 그 정도의 여유자금을 반드시 쥐고 있어야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겠지요.
그런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적어도 현재의 한국 시장은 매력이 없음을 넘어 계산에 넣지 않아도 무방한 동네가 됩니다.
여담인데, 위의 현실을 가장 멋지게 표현한 어느 분의 문장이 대략 이거였습니다.
만약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최신작의 전세계 판매량이 약 550만장이라는 발표가 나왔다고 치자. 한국은 그 약에 들어간다고 보면 되는 거다.
...부정할 수 없지요. 냠.
이미 닌텐도는 세계 3대 시장인 미국·일본·유럽을 충분 이상으로 장악하고 있으며, 굳이 한국 등의 군소 시장을 돈들여 애써 개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타사가 돈과 노력으로 쓸만한 시장으로 일군 후에 후발주자로 참여하더라도 강력한 소프트/하드 개발력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충분히 대등 이상의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닌텐도이니만큼, 굳이 먼저 뛰어들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신유기(新遊機)라는 신기종까지 새로 개발하고 자사의 구 닌텐도64 소프트를 중문화해가면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의 닌텐도입니다(). 결국 닌텐도에게, 한국 시장이란 그 정도의 포지션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도 간단하게 도출됩니다. 한국 시장의 시장성이 충분하며 닌텐도가 지사를 세워가면서까지 뛰어들 가치가 있음을 수치와 실적으로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선결될 과제가 바로, 닌텐도 아닌 타 회사의 하드웨어와 그 서드파티의 소프트웨어가 큰 히트를 치는 어엿한 대형 시장으로의 전개인 것입니다. 즉, (차세대기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PS3나 Xbox 360이 세계 3대 시장에 못지 않은 흥행과 인기를 보여주면 닌텐도는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들어오고 한글로 된 슈퍼마리오도 만날 수 있다는 얘기 되겠습니다.
닌텐도 팬이라면, 연말에 PS3나 Xbox 360부터 일단 하나 구비해놓는 게 좋을 듯싶기도 합니다. :>
한국은 그 시장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도 세계 IT업계의 테스트베드로서 유수의 IT업계 첨단 신제품이 각축을 벌이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역시 그 근간에는 신기술에 돈을 아끼지 않는 높은 관심도와 구매력, 까다롭고 목소리 높은 소비자층, 그리고 기본적으로 IT제품 역시 가전이며 하드웨어라는 점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비디오 게임의 플랫폼 홀더라는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의 그 어느 특성도 그리 플러스 점수가 되지 않습니다. 애시당초에 신기술의 집약이 곧장 승리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게 게임 하드웨어인데다(게다가 닌텐도는 삐까뻔쩍한 첨단의 신기술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 대표적인 플랫폼 홀더 되겠습니다), 하드웨어는 복제가 안되니까 살 뿐 소프트웨어라면 거리낌 없이 복제하고 백도어를 찾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이다 보니 소프트 개발력이 강한 닌텐도로서는 절대 신뢰할 수 없는 동네이며, 또한 그나마도 뛰어들어서 그만큼의 수익이 보장된다는 그 어떤 성공사례도 존재하지 않은 시장이기도 하기 떄문입니다(적어도 게임계에 한정해서는 말이죠).
만약 한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이 PS2가 수백만 대 규모로 팔리고 소프트가 1년에 적어도 두세 개 이상의 수십만 장급 메가히트 타이틀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성숙되었다면, 닌텐도의 한국 진입과 지사 설립(가칭으로 NOK; Nintendo of Korea라고 해둡시다)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는 현재였을 것이며 Wii 역시 아무도 국내 연내발매를 의심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현재는 그렇지 아니합니다. 고로 미래도 그리하지 아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겁니다.
닌텐도의 전통이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유통사나 수입사 레벨의 회사에게는 닌텐도는 어떠한 지원이나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현재 닌텐도의 지사는 북미와 유럽(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에 분포), 오스트레일리아 등 시장 규모가 확실하고 보장되어 있는 국가에만 세워져 있으며, 또한 이렇게 지사가 분포한 국가에는 확실한 현지화와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정녕 이들처럼 특별대우를 받고 싶다면 NOK라는 닌텐도의 지사 설립은 필수 요건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시장이 이만큼의 규모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타 기종의 호황을 통해.
요는, 그겁니다.
정말로 닌텐도가 한국에 들어오길 바란다면, 닌텐도의 팬이고 Wii가 한국에서 한국어 OS가 내장되어 팔리는 감격적인 광경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저 커뮤니티의 게시판 같은 곳에서 타 기종을 깎아내리고 비아냥거리며 배설의 쾌감에 만족할 게 아니라 그 타 기종을 적극적으로 사 주고 소프트도 활발하게 구매하여 하나의 강력하고 신뢰성있는 시장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입니다. 적어도 그 기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Wii도 제대로 들어올 일 없으니 말입니다.
이는, 제가 아래의 어느 포스팅에서 쓴 바 있는 게이머라면 자중지란으로 싸울 게 아니라 서로 연대하여 앞으로의 게임 환경을 더 낫게 만들어도 모자라다라는 요지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게임은 아이들만의 유희라느니 어른이 되어서까지 유치하게 논다느니 하는 코멘트에는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들 반응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어린이 레벨의 기종싸움이나 야유에만 몰두하는 꼴은 애석하게도 별로 아름답지 못합니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몰락하길 기도하기 십상인 PS3나 Xbox 360이 이 땅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한, 닌텐도는 절대 한국에 작심하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얘기가 어쩌다 이리로 빠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가 한국에 한글로 게임을 내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PS3가 됐든 Xbox 360이 됐든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그 단물을 마음껏 빨아먹는 것. 먼저 시장을 만들어주고 나서 뭐라 해도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게임을 소비하는 우리들 소비자부터 소비자 대접 받을 만큼의 구매와 유희를 실천하는 것이 먼저일 터입니다.
* 추가사항
검색어 등으로 본 포스팅을 찾아 읽으러 오시는 분들을 위한 안내사항입니다만,
한국닌텐도가 6월 29일부로 정식 설립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에 관련된 보충 포스트도 작성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외진 곳까지 찾아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