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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MIN






Photographed by Phio, '05.

며칠 전 문득 만화가 겸 교수 이원복씨에 대한 짧은 상념이 떠올라서, 한 번 여기에 옮겨 봅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오랜 세월동안, 이원복씨는 저에게 있어서는 국내 최고의 만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낡디낡은 1989년도판(제 10판)으로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그의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초기 수작 중 하나인 [부에노와 말로](아마 새소년에서 출간되었을 겁니다)는 재판이 출시된다면 기꺼이 다시 사서 읽어보고 싶은 만화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학교]는 어쩌다 재출간되었을 때 잽싸게 사지 못한 것을 지금도 살짝 후회하고 있는 중이고,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개인적으로는 그가 내놓은 최고의 역작으로 치고 있을만큼(공저이긴 하지만) 좋아하는 책입니다. 적어도 주간조선 연재작이었던 [현대문명 진단] 정도까지는, 그의 책이 나왔다는 얘기만 들으면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사서 읽곤 했습니다. 제 경우 이렇게 꼬박꼬박 제 돈 주고 사 주는 작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웃음).

제가 어릴 때 배웠던 이런저런 상식이나 사고방식 등은, 적어도 그의 저서에서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지금도 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2권 초두에서 '나도 언젠가는 파업할 수 있으므로 다른 노동자 집단의 파업을 묵묵히 용인하는 프랑스인의 시민정신'과 '노동조합'에 관한 서구적인 관점의 환기(...저 엄혹한 80년대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런 서술이 당시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경이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돌이켜보자면), 선진국이 선진국일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사회보장'제도임을 철없는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한 그 솜씨는 정말로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중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었음에도 그의 책은 놀라울 정도로 정치적이었고(부정적인 의미 아님),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먼나라 이웃나라]는 87년 초판 발간 이후로 제가 구입한 89년도판까지 무려 10판이 나오며 상당 부분 칼질되고 수정되는 등의 수난을 겪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녀석의 눈에도 뚜렷이 보이는 그림 수정된 흔적이나 문제가 될 만한 서술을 수정액으로 밀어버리고 이름모를 다른 인간의 필적으로 덮어씌워 버린 잔해가 여기저기 발견되어, 도대체 이 아래에 무슨 그림이나 글이 있었길래 이렇게 가필되어야 했던 것인지 궁금해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뭐, 지금은 아예 디지털 보정되고 글자까지 인쇄체로 바뀌어 버려서 그때의 맛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정말 읽고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식사할 때마다 눈요기용으로 읽기까지 했을 정도로, 저에게는 나름대로 사랑받았던 몇 안 되는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어쨌든 갖고는 있으니까.

그리고 90년대 초 냉전의 해체 - 데탕트(detante)의 물결을 타고 발간된 송병락 교수와의 공저인 [만화로 읽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대략 중학교 때 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때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이 책 역시 당시로서는 기막힐 정도로 진보적인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심지어 보수층이라는 인사들까지도 그러합니다(...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에만 있을 법한 해괴한 대치어를 만들어 쓰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만). 노태우 정권의 출범을 기점으로 사회가 약간 민주화된 것처럼 보이던 당시이긴 했지만, 그런 시대에 감히 '자본주의'와 (특히) '공산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양 체제를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책이라는 것은 대단했습니다. 그것도 일반인이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다'라는 명제 하에 '자본주의란 이런 제도'라며 상세히 알려주는 알기 쉬운 그림과 서술,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사람들의 삶과 사고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한 것 ─ 특히 공산주의 국가도 결국 사람 사는 나라다라는, 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알려준 것은 일종의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냉전의 잔재, '공산주의 국가는 사람이 아닌 늑대들이 사는 곳'이며 '호시탐탐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자본주의 진영을 침탈할 야욕에 넘치고 있'고 끝없는 착취와 폭압과 기아만이 넘치는 악의 제국이라는 그 설정. 그 설정이 실은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세뇌 기제이며, 결국 공산주의 국가 역시 이 나라와 경제 시스템만이 다를 뿐인 '사람 사는 나라'라는 것. 이걸 알려준 것이 이 책의 최대 공로였습니다.
물론 그런 책이 이 책 이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권력자들이 대부분 경원시하는 매체인 만화를 통해 이러한 민감하고도 정치적인 주제를 유연하게 표현해낸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낸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빛난다고 봅니다.
뭐,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국가의 저서'인만큼 결국 자본주의의 승리로 손을 들어 주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의 중립적 관점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게 어딥니까. 그런 거죠.

...그런데, '역사적인' 김대중 정권의 출범과 그 뒤를 이은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등을 거치면서 이원복씨의 만화에서는 시대를 앞서는 이런 진보적인 서술이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단순한 기업 홍보 만화에 지나지 않았던(...의뢰에 의해 그렸다고는 하지만) [나부터 변하자]라던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서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어반복하고 있는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하필) 주간조선에 연재하기 시작한 [현대문명 진단]은 도대체 이 분이 과거의 그 분이 맞는건지 의아하게 만드는 서술이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내용이 가벼워지고 피상적으로 가는 것이야 주간지 연재의 특성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파업이 심해서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좃선일보 사설에나 나올만한 매도를 과거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편을 그린 작가의 필체로 보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의 논조는 점차 보수 ─ 라기보다는 수구 ─ 의 색채를 띠어 가고, 해외의 사례를 피상적으로 떼어 와 한국의 여러 비주류들을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형태로 바뀌어 가기 시작합니다. 대략 [현대문명 진단] 3권쯤 가니까, 더 이상 이 분의 만화를 마음 편히 볼 수가 없게 되더군요.

...그 절정에 2001년 6월경의 저 유명한 서울대 동창회보 만평 논란이 있습니다(다시 보시려면 클릭). 이 논란과 동시에 (당시가 마침 선거철 직전이었으니까) 인터넷 여기저기로 그 만평의 스캔이 빠르게 퍼지곤 했는데, 그걸 처음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왠지 분노가 아니라 서글픔이었습니다. 이분이 이제 여기까지 갔구나, 라는.

이제는 그의 만화를 여간해서는 잘 보지 않습니다. 구입했던 책들은 아직도 대부분 소장하고 있긴 합니다만.
새로 개정 출간되었다는 [먼나라 이웃나라]도 한 번 보긴 했습니다만 도무지 예전의 그 느낌이 나지 않아 구입을 포기했고, 특히 그 문제의 [먼나라 이웃나라] 12권 - 미국편을 서점에서 서서 읽으면서는 정말 우울해지더군요.  인생의 우상 한 명이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뭐 그런 종류의.


한 사람의 사상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리도 없고, 또 그걸 바래서도 안되는 것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릴적 아무것도 모르던 한 아이를 깨우쳐준 어른이었던 분이 이제는 '이전보다 비교적 좀 진보적이랍시는' 현 정권을 조롱하는 보수적 기성세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광경을 보는 기분은 별로 석연치 않습니다. 뭐, 이제는 그런 감정마저도 예전 일이긴 합니다만.

...간만에 꺼내 본 89년도 [먼나라 이웃나라] 제 10판의 종잇장은 예전보다 훨씬 누르고 낡아 있더군요.
뭐,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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