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최근에 산 것 두 개. 온라인 게임 안하는 사람이지만 순전히 내용물이 빠방하고 피규어가 잘 빠져서...라는 좀 얼빠진 이유로 산 [리니지 II 프라임 패키지](존내 비쌈)와, 예전부터 발매되기만 바라고 있던 [Mr.히치 :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의 정식발매 UMD입니다.
영화에 그리 취미가 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같은 건 나름대로 즐겁게 보는 편인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 윌 스미스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면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하는가...가 궁금했었습니다. 극장 개봉되긴 했었던 것 같으나 타이밍을 놓쳤으니, UMD라도. 음.
영화를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며 볼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과거 워크맨이 가져다주었던 신선한 즐거움의 재림이기도 합니다. 가끔 PSP의 영화 UMD를 놓고 '사람들이 뭐하러 이동하면서 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식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거 직접 해 보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특히 지하철로 2호선 반바퀴를 돈다거나(...) 하는 정말 지루한 이동과정에서 이 '휴대용 영화 보기'의 재미는 빛을 발합니다. 특히 PSP의 영화 UMD는, 말 그대로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말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초발군의 화질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더욱. DVD는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지나치게 거추장스럽고 번거롭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영화 UMD는 확실히 가치있는 물건입니다. 앞으로도 관심이 가는 영화가 UMD로 출시되면 꾸준히 사줄 생각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클릭할 때는 늘 그렇듯 스크롤 압박에 유념하시길.
작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는 그 문제의 일병 GP 초토화 사건 얘기.
이 사건이 처음 일어나 속보로 전파되면서 충격을 줄 당시...에는 사실 마감의 첨단을 달리고 있던 마당이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들어간 식당에서 신문을 우연히 펼치니까 대대적으로 실려 있어서 처음 알았지요. 뭐 일단은 그랬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께는 명복을.
그리고 이하의 개인적인 생각에 일단 깔리는 전제입니다만, 저는 김모 일병에게 죄가 없거나 적다고 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제도의 희생양이라고 치환할 생각도 없습니다. 어쨌건 그는 자신이 책임지지도 못할 사람들의 목숨을 너무 많이 끊어버렸고, 죽은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그 죄를 갚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개인적으로는 사형 반대파라, 영구 종신형 정도는 좋을라나요. 뭐 어쨌든.
이번 사건의 보도 경과를 쭉 보면서 드는 생각이라면,
군이나 언론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나
묘하게 사건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전방이든 후방이든, 어쨌든 군대란 데에서 복무해본 사람이면 잘 아시겠습니다만... 사실 군대라는 폐쇄조직은 그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더 이상한, 매우 비자발적이면서 비효율적이고도 부자연스러운 공동체입니다. 애초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고, 사람들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통제하고 사역시키기 위한 조직이니만큼 내부적으로 막대한 강제력과 비논리와 고유의 사고방식이 지배하며, 또한 그걸 개개인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 닫힌 계(界)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며, 또 그렇기에 그런 계에서 어쩌다 한 번씩 발생하는 사고는 그만큼 더 참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억압에 대한 분출의 반작용은 항상 억압에 정비례하기 마련이니까.
요는,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원인을 굳이 따지고 들어가면 군대 그 자체의 존재를 문제시삼아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관계자들이나 그걸 지켜보는 군대 갔다온 사람들이나, 거기에는 웬만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군대의 부재를 누구 하나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군대 문화에 깊이 잠식당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니까요.
전국민의 대략 반 이상 ─ 그것도 남자로 태어난 인간의 거개가 군대를 인간의 당연한 의무로 알고 청춘을 바치는 나라이다보니, 군대는 자연히 당연히 있어야 할 조직이자 누구도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조직이 됩니다.
사실 군대가 현대 국민국가에서 그런 조직인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걸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는 순간, 군대는 그 심리적 허점을 이용하여 사건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게 됩니다.
이 나라가 어디까지나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 하는 나라이다보니까, 징병기관은 국민집단에서 군대 갈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골라내기보다 군대를 도저히 가면 안 되는 사람을 골라내는 데 더 심혈을 기울입니다. 말하자면 best를 찾아서 집중적으로 써먹으려는 게 아니라 worst를 떨궈내고 나머지를 전부 밀어넣기 위해 골몰하다보니, 결국 이나라 군대의 곳곳에는 수많은 폭발 직전의 뇌관이 잠재적으로 심어져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들 중 하나만 폭발해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의 대형 사고가 되는 겁니다.
더 우울한 것은, 그렇게 군대 조직 내에서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 암세포 ─ 이들을 군대 내에서는 이른바 '고문관'으로 부릅니다만 ─ 가 되어버리는 불운한 청년들은, 사실 군대가 아닌 다른 조직에 있었다면 훨씬 더 뛰어나고 우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사람들인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군대에 온 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군대에 밀어넣은 국가가 문제인 셈이죠. 그들이 오고 싶어서 군대에 온 게 아니잖습니까.
군대를 전역한 사람들이 흔히 군대는 남자라면 한 번은 가야 하는 곳이라거나 군대가면 사람된다라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군대는 군기가 빠져서 같은 자랑인지 자위인지 헛갈리는 소리들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만, 무슨 말로 미화하더라도 군대는 결국 비인간적이며 비자연적이고 비자발적인 조직이고, 입대 이전까지 쌓아왔던 경험과 지식과 능력이 완전히 제로로 돌아가는 환경에 예외없이 내던져져 2년씩이나 인간을 맨땅에서 구르게 만드는 매우 비효율적인 사회조직이고, 바깥에서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부적인 논리나 위계, 이치와 상식. 계급과 명령과 폭력 등을 모조리 동원하여 개인의 사유를 평준화시켜 단순한 병력(兵力)으로 전락시키는 몰개성적인 공동체에 다름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곤 합니다. 사실 그게 당연한 것이,
그런 걸 다 인정해 버리면
그런 데다 자신의 청춘을 버린 게 너무나 분하고 아깝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애써 합리화하고, 긍정하고, 더 나아가 그런 자기최면을 부정하는 모든 사실에 비이성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하고 분노하게 되는 겁니다. 그 좋은 예가 군가산점 논쟁이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논쟁이며, 스티브 유 사건인 셈이지요. 그런 일련의 사건에서 이른바 예비역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게시판에 몰려가 어떤 비논리와 비이성을 쏟아냈는지 옆에서 목도한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그들이 진정으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 말이지요.
여하튼,
군대를 안 간 사람들보다 간 사람들이 더 많은 이 나라이다보니
군대란 조직은 어디까지나 필요악일 뿐이라는 걸 너무 쉽게 망각하게 되고 군대라는 조직의 실존 그 자체가 문제라는 본질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본질을 무의식중으로 감추기 위해 다른 희생양을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넘이 원래 싸이코였다느니 이나라 군대가 너무 민주화(...)되어서 그렇다느니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느니 고참이 고참 행세를 못해서 군대가 거꾸로 돌아간다느니
그런, 문제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가짜 원인들이 색출되는 거지요.
더 나아가,
그제쯤부터 맹렬하게 일간지를 비롯한 각종 기성언론들이 잘 걸렸다는 식으로 뻔질나게 돌려씹고 계시는
김모 일병이 게임광이었댄다. 게임이 문제다라는 식의 보도 역시
실은 그러한 심리기제 ─ 즉 진짜 문제의 본질을 돌리기 위한 방어심리에 기반한 겁니다.
(여기까지 오실 분들이면 다들 접해보셨겠으나, 그래도 관련기사 한 번 보셔야겠다는 분들은 여기와 여기를 클릭하시길)
사안이 너무 큰지라 군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니, 다른 희생양이 필요해지거든요. 이때 만만하게 동원할 수 있는 핑계거리가 청소년들의 문화인 게임이니까, 그쪽으로 문제를 호도하는 겁니다. 정말 더 큰, 더 구조적인, 더 본질적인 문제를 들춰내면 군의 존립이유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실은 이러한 희생양의 대표적인 케이스로서 몇년 전까지는 대개 영화가 그런 험한 꼴을 많이 당했었는데, 이제는 언론도 거기다가 핑계를 댈 수가 없거든요. 영화 보는 인구가 장난이 아니고, 경제규모도 장난이 아니며, 괜히 그런 데로 여론을 호도했다가는 역풍 맞기 딱 좋으니까. 결국 대한민국의 게임계는 아직도 그렇게 만만한 동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뭐 어쨌든.
이번 사건은, 군 관련 사건사고가 대개 그렇듯 군대라는 그 시스템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군대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은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군은 늘 그랬듯, 후속조치로서 전군에 사고사례를 전파하고 무기관리 규정을 더 엄격하게 강화하며 감시체제를 더 빡세게 돌리고 병들에게 구타/폭언 금지와 우애 넘치는 병영생활 확립을 지겹도록 강조하겠지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말입니다. 하긴, 그런 건 군 관계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 육군이 모병제로 바뀌던지 북한이 무해화되어 전쟁의 위협이 크게 감소하던지,
둘중의 하나 정도는 되어야만, 이번같은 이런 시스템의 오류에 의한 비극적인 사고는 확연히 감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육군이 아무리 민주화되고 인간적이 된들, 그 시스템의 사각에서 구타당하고 비하당하며 존재를 말살당하는 인격은 차고 넘쳐날 것이며, 그들은 결국 스스로도 원치 않는 암세포로의 변이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내재한 채 오늘도 기상나팔과 함께 일어나고 취침나팔과 함께 잠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