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뭔가 일상적인 포스팅조차도 제대로 못 올렸던 감도 있고, 그나마도 최근 몇달간 올린 포스팅이 대부분 나른하도록 harmless했던 것들인지라(...) 그에 대한 약간의 반동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짤방사진 과감히 날리고(...) 좀 다른 방향의 얘기를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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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또 솔솔 한글화 패치(패치라기보다는 비공인 애드온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 싶은 느낌은 들지만)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제 PC게임 쪽에서는 아예 일반화 레벨까지 내려오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좀 즐긴다는 어느 제 3세계 국가에서건 남의 나라 인기 게임을 언어가 달라 못 즐기겠으니 유저가 직접 현지화해서 즐긴다는 개념이 일상화되어 있는 나라가 한국 외에 또 어디가 있는지는 좀 궁금하긴 합니다.
일단 미리 못박아 두는 겁니다만,
저는 소위 비공인 한글패치라는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용인이 안 되며, 용인해서도 안 되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되는 게임이 한국에서 잘팔렸건 안팔렸건, 한국에 나왔건 안 나왔건, 번역의 질이 뛰어나건 그렇지 않건 매한가지입니다. 원저작권자의 허가나 용인을 득하지 않은 모든 유저 차원의 비공인 한글패치는 존재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당연히 문제시삼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이미, 소위 한글패치가 게임시장 전체에 일종의 모럴 해저드를 만연시키고 있고 실제적으로 간접적인 피해와 상실감을 일으키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더 말이죠.
여기에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활동중인 어느 커뮤니티에서 제가 반년쯤 전에 올린 바 있는 글을 첨부합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올립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해 글의 전체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약간의 가필이나 수정은 했습니다만.
좀 기니까, 일단 more로 닫아 둡니다. 여는 순간 스크롤 압박이 상당할 터이니 양해하시길. 냥.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유저들이 '한글패치'라는 형식으로 행하는 이른바 비공식 한글화에 대해 별로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의를 인정해준다 하더라도 결국 원작자와 원제작자가 인정하지 않는 음지의 한글화에 불과하며,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역해석(reverse engineering)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구입에 따른 계약에도 위반되고, 번역자의 바램이야 어쨌든 결국 불법복제와 상용 데이터의 무단 유통을 방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번역된 텍스트의 질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책임을 진다 함은, 단순히 자신의 신상을 readme로 밝히거나 나중에 추가 패치로 오역을 수정해 준다는 차원의 것이 아님을 전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단 한글패치가 적어도 적법은 아니다라는 사실에 동의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수익을 거두기 힘든 게임들은 어느 정도 선에서 한글화가 용인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일테면 고전게임이나, 혹은 18금 미소녀물이나.
...문제는, 그 상업적 수익을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을 도대체 누가 내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게임시장에서는 수많은 고전게임들이 컬렉션이나 염가판 등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으며, 설령 그렇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게임의 오리지널 소스에 대한 최종적인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결국 원제작자와 판권사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권한을 침범할 어떠한 권리도, 최소한 우리들에겐 없습니다.
이런 유저 한글화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이는 논리는 아마도 이것일 겁니다.
이런 좋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가 안 되고 한글화가 안되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작품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설령 유저에 의한 것이라 해도 한글화가 필요하다.
...그런가요.
소개되어 반향을 일으킬 정도의 게임이면 언제가 되건 누군가 나서서 내놓습니다. 사갈 사람의 시장과 규모가 파악이 제대로 된다는 전제 하에 말이지요.
시장이 되지 않으니까, 더 정확히 말해 불확실하니까 판매를 못하는 것이고, 한글화를 못하는 겁니다. 그게 확실하고 사람이 사주는 게 보이는 시장이면 수입이고 한글화고 술술 잘됩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90년대 중반(IMF 이전까지)의 PC 패키지 시장과 초창기의 PS2 소프트 시장 상황이었습니다. 돈이 돌아가고 물건이 팔리는 시장을 외면하는 상인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위 명제의 전제인 '좋은 작품이 한글화로 소개되지 못하는 상황'은 실은 전제가 아니라 현황인 것이고, 그 현황을 타개하고 정상적인 시장으로 만드는 게 급선무입니다. 현황이 이러니까 비정상적인 것을 용인하자는 얘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건 비단 PC 패키지 시장만이 아니라, 국내의 거의 대부분의 문화상품 시장에 그대로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타개해야 할 비정상적인 현황이 오히려 정상적인 전제조건이 되고, 그걸 타개하기 위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노력해야 할 남들보다 좀 더 안다는 매니아들 이 오히려 그 현황을 이용해 귀중한 창작물을 해체하여 비인가적으로 재구성하고 즐기는 것.
대단히 냉혹하게 들리는 논리이겠지만, 제 생각은 어쨌든 그렇습니다.
유저 한글화가 대한민국 게임시장에 가져다준 득이 도대체 뭐가 있는지를 역으로 반문해 보면, 이 정도의 생각은 누구라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소개되지 못한 작품, 알려지지 못한 작품은 대개의 경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므로 소개되지 못하고 알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걸 유저 한글화라는 비정상적인 행위로 억지로 돌려놓으려는 수많은 노력의 결과, 한국의 패키지 게임시장은 IMF 이후 1mm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빈사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매몰찬 평가라고 보십니까.
잘못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잘한 거라고 볼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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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글은, 실은 저작권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보호받아야 할 창작자의 권리란 과연 무엇이냐를 대충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쨌건 조낸 장황하게 썼지만, 말하자면 딱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는 겁니다.
남의 귀중한 창작물을 창작자와 권리자의 의지에 상관없이 멋대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즐길 권리를 도대체 세상의 누가 주었는가.
만약 위의 한 줄에 누군가가 자신있게 대답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 글과 논리에 대한 가장 간결하고도 훌륭한 반박이 될 것입니다.
(2005/11/16)
한글패치는 분명 유저 차원의 비영리적인 행위이며, 그렇기에 그 나름의 의미도 존재한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건전한 활동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의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건전하다는 것, 그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여기서 일단 선을 그어 둡니다만, 위의 말은 그냥 말 그대로, 즉 원칙론입니다. 선의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과 건전하다는 것, 양자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별다른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이어지는 예가 많아 보이니까 다들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죠.
자신들은 순수하게 선의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그게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역행하는 행동인 경우가, 따져보면 의외로 많습니다. 제 말도 단지 그것을 지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글패치가 왜 결국 건전하지 못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지는 이전의 글에 다 나와 있으므로 일단 생략.
유저 한글화가 게임의 수익성에 타격을 입힌다는 명시적이며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 않는가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한글패치 때문에 정품을 살 사람들이 사지 않고 복제로 즐긴다는 논리가 설득력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명시적인 입증이 안 된다는 얘기.
물론, 그걸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어쩌면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의 제 글에서 미리 밝혔듯, 중요한 건 게임이 안 팔리는 이유가 한글패치 때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름아닌, 한글패치의 존재 그 자체가 시장의 수요 관측에 커다란 예측불가능성과 불투명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들 자신을 수입업체나 배급업체의 홍보담당자로 가정하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 미지의 시장에 돈을 부어 수익을 뽑아내야 하는 직위이며 이를 위해 시장의 수요를 미리 예측해야 할 입장에 있다고 가정할 때, 한글패치 ─ 더 넓게 보아 불법복제까지 ─ 는 이러한 예측에 엄청난 방해요소가 됩니다. 제아무리 유저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1인시위를 하며 손가락을 따 혈서를 쓴다 한들, 열화와 같은 발매촉구 이메일과 편지가 날아들고 잡지에서 '이 게임이 국내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시대적 불행이다'라고 통탄한들, 업체는 그 의견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분명 수요는 존재하지만, 그 수요가 업체의 이익과 합치된다는 보장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불확실한 수요에 겁없이 투자할 수 있는 업체는,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 못합니다. 또한 그런 불확실한 수요를 믿고 투자한 업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시장에게 배신당하여 절멸한 사례가, 한국 게임유통 역사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한글패치는 기본적으로 해당 게임의 데이터를 불특정 다수가 자유롭게 액세스하여 취득할 수 있는 상태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그 존재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한글패치를 제작하는 측이 대개 내세우는 가장 큰 존재논리가 다름아닌 '이런 좋은 게임이 국내에 정식 소개되지 못하여...'인데다, P2P를 위시한 불법취득 루트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는 한 국내에 정식 소개되지 못한 게임의 한글패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한글패치와 불법복제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가장 강력한 증명이 됩니다.
물론, 여기에 따른 역논리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제작사에서 한글패치를 빌미로 소송을 걸거나 법적인 문제를 제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 않는가라는 겁니다. 이제까지 서면이나 권고 등의 형태로 한글화팀에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해 좌절(?)시킨 케이스가 없지는 않지만(주로 미소녀물 쪽에서지만), 확실히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케이스는 저도 아직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왜일까요?
간단합니다. 한글패치가 매상에 타격을 입힌다는 걸 명시적으로 성립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앞서도 밝혔듯, 한글패치와 매상 저하 간의 상관관계를 명시적으로 입증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라기보다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만). 그런 상황에서 소송을 건다는 것은 지리한 법적 공방과 소모전, 그리고 져도 이겨도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합니다. 소송에 이기건 지건, 이미 상황은 끝난 상태이니까요. 이런 형태에서 EA 정도 되는 대기업이 자기 나라에서 이런 사태 당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일반적인 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앉아서 당하고 말던지, 그냥 게임 안 내고 마는 게 훨씬 골치가 덜 아픕니다. 물론 이렇게 될 때 궁극적으로 어느 쪽에게 손해인지는 따지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물론 이러한 역학관계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잘 알고 있는 측은, 다름아닌 한글패치 제공자들입니다. 즉 이런 상황을 악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서로의 역학관계를 악용함으로써 한글패치 제공자들이 무단으로 상용 게임 프로그램을 해체하여 비인가 패치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지.
따라서, 한글패치는 불법이지만 저작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필요하다면 사회적인 용인하에 이루어질 수 있다라는 논리에서 전반부는 맞습니다만 후반부는 검증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누가 한글패치를 사회적으로 용인했으며 이를 용인할 권리를 누가 준 것인지, 그것부터 먼저 밝히고 시작하는 게 순서라는 것은 저의 첫번째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즉, 다시 간추리면 저작자의 동의만 얻는다면 나쁘지 않은 행위가 곧 저작자의 동의를 얻기 전에도 정당화되는 행위는 되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논리적 사실 되겠습니다.
저는 갖은 노력을 다해 원저작자와의 합의를 이끌어내 유저 한글화에 성공한 조낸 희귀한 사례까지 불건전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정도의 노력을 했다면 그건 상찬받아 마땅하죠. 어찌됐든 해외의 게임문물을 유저의 번역으로 즐겨야 하는 변방의 우울함을 되새기는 씁쓸한 사례 중의 하나로는 남겠지마는.
이쯤에서 간단히 따져봐야 할 것 중 하나가, 번역작업 자체는 문제라 치고, 그 번역물 자체의 저작권은 과연 성립하는가일 것입니다.
저작권 관련 조항에 의하면, 이를 '1차저작권'과 '2차저작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원문을 타국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물이 있을 경우, 일단 이 결과물에는 원저자의 1차저작권과는 구분되는 '2차저작권'이 번역자에게 부여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2차저작권자는 일단 자신의 번역물에 대해서는 정당한 권리를 가집니다.
...다만, 이 경우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문의 전체를 번역하면 2차저작권과는 별개로 1차저작권자의 저작권 침해사유가 됩니다. 세계저작권조약에서는 번역물의 경우 비영리적이나 학술적인 사유로 원문의 일부를 번역/인용/발췌했을 때에만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번역일 경우 비영리라도 저작권 침해사유로 간주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비공인 한글패치의 경우 2차저작권은 존재하나 인정받지 못하는 저작권에 불과하게 됩니다. 깔끔하게.
정리할까요.
한글패치라는 물건은 누가 보아도 자유로운 모방도 아니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조도 아니고 다양한 양식들의 전파는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허가를 득하지 못한 타인의 창작물의 무단번역에 불과하며, 우리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행동이니 댁들도 좀 이해해달라는 논리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보호받지 못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피레프트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GNU 선언문조차, 카피레프트의 개념을 어디까지나 소스코드 및 생산기술의 공유에 한정하고 있습니다. 상용으로 팔리며 카피라이트가 걸린 생산물의 권리조차 해제되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저 한글화가 굳이 창작자의 의도에 반하거나 이익을 침해하는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업체에서 한글화했답시는 물건도 한글화 개판이어서 원작의 훌륭함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 판국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해소해 주고 더 많은 이들이 게임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라는 결과론적인 얘기도 있기는 합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제작사의 한글화가 형편없어서 그것이 못할 물건이라면 그건 당연히 안 팔려서 손해를 봐야 마땅합니다. 부가적으로 항의 메일이나 게임 커뮤니티 등의 압력단체가 압력 행사까지 들어가면 더 좋죠. 너희들은 이런 잘못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팔릴 리가 없다라는 등식이 확립되면, 수입업체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도 한글화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게 정상적인 시장 돌아가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한글화가 개판이라고 유저가 멋대로 한글패치를 만들어 돌려버리면? 한글화를 제대로 안 해도 게임 패키지는 변동 없이 그대로 나가시니 업체가 각성할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번역 프로세스의 진보는 바랄 수 없으며 업체는 퍼블리싱 비용을 절약하고 삭감하기 위해 가장 돈 깎기 쉬운 한글화부터 투자를 줄일 겁니다.
거기다가 불법복제까지 덧붙으면? 판매량이 줄어드는 게 한글화를 잘못해서인지 불법복제가 창궐해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처음부터 계속 강조한 시장의 불투명성입니다. 한글화를 제대로 하건 말건 판매량은 미친개 널뛰듯 난동을 부리는 시장에 어느 회사가 계속 투자를 합니까. 유저는 유저 맘대로, 아무도 그 질을 책임지지 않는(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논점 포인트 중 하나인데, 아무도 여기에는 주목하지 않는 듯) 비공인 한글패치를 돌리는 와중인데 게임 패키지가 정품이건 말건 이미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십만 천만이 그 게임을 접해봤자 그 게임이 도대체 얼마나 인정을 더 받을 것이며 얼마나 더 추앙을 받을까요. 차라리 안 알려지고 파묻히는 게 시장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뿐일까요.
정발 가능성이 있는 게임만 한글화하지 않으면 상관없지 않나라고도 합니다만, 그 정발가능성을 도대체 누가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이것 역시 첫 글부터 지적했던 논리적 헛점입니다만.
지금 안 들어오는 이 게임이 10년 뒤 클래식 합본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눈먼 회사가 들여올지, 지금 유저 한글패치가 뿌려진 이 게임때문에 물밑에서 한글화 정발을 협상중이던 어느 회사가 입을 헹구며 손을 놓아버렸는지, 유저가 예언자가 아닌 바에야 그 누구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즐기는 어느 게임이 당장 3~4년 뒤 어떻게 될지 과연 장담할 수 있습니까. 없다면, 그런 단언 역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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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런 류의 논쟁이 최근 몇년간 계속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저작권이니 뭐니 따지는 데 철저한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자신이 뭘 만들어서 돈벌어먹고 살기 대단히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린 탓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저작물의 운명을 자신이 제대로 결정할 수 없는 나라에서 어떤 창작자가 걸작을 만들 것이며 어떤 수작이 나오겠습니까.
원칙이 확고하게 선 이후에야 변칙이 있고 예외가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소리바다 사태 같은 최근의 저작권 관련 왈가왈부를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봅니다(...솔직이 말하면 만시지탄이긴 합니다만. 사실 저작권 관련의 원칙은 이미 90년대 초중반 정도에 다 매듭짓고 끝났어야 합니다). 이나라의 창작자들이 드디어 제밥그릇 제대로 찾아먹는 데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며, 타개해야 할 현실을 오히려 이용하여 돈을 벌던 측이 제대로 당하는 시범케이스 가 몇 개 좀 벌어져야 인식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질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최소한 5~10년은 이런 걸로 더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눈을 뜬 댓가이니까요.
같은 이유로, 저는 유저 커뮤니티 등에서도 이러한 논의와 논쟁이 더 활발해지길 바랍니다. 인격을 비판하는 것과 말, 의견을 비판하는 것은 별개이니까요.
(2005/11/23)
Ps. 이론(異論)이나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자유롭게 트랙백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