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잡지 이번호 후기에서 예고했던 바로 그 화제의(...) 컵라면, 면왕[닛신 라오우(ラ王)]의 시식기 되겠습니다. 저번 TGS 취재 나갈 때 팀장님을 비롯한 높은 분들(...)의 '가능한 한 많이 사와라'라는 압박도 있었고, 그렇게 많이들 칭송하는 라면의 맛이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어서, 제가 먹을 것도 사온 게 벌써 몇 주 전. 마감도 있었고 이럭저럭 넘기다보니 벌써 꽤 시간이 지나 있어서,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오늘 아침밥 대용으로 깠습니다(...).
라면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모 잡지 이번호 후기를 참조하시길.
...어쨌든, 이 네이밍 센스는 누가 봐도 노린 것.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들어서 알 만한 그 만화의 모 캐릭터 패러디로서, 뭔가 먹으면 북두백열면(...)과 남두수조면(......)이 파도를 칠 것같은 그런 남자의 느낌이 한가득.
300엔이 넘어가는 가격적 압박이 눈길을 끌긴 하는데, 무게 역시 그에 만만치 않은 266g입니다. 국내의 컵라면 대부분이 120g을 넘어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농심 생생우동은 276g) 상당한 무게. 이 무게의 이유는 내용물을 까보면 밝혀집니다. 냠.
맛은 일단 포장에 쓰여진 대로라면 간장(しょうゆ)라면 맛.
비싼 라면답게 조리방법도 다른 컵라면과는 미묘하게 다른 편. 커피포트를 미리 준비해둬야 한달까나.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사먹는 식의 라면은 아닙니다.
일단 뚜껑을 따면......
...이렇게 됩니다.
말하자면 2중 뚜껑인데, 나중에 물을 버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마련해둔 것. 국내에서도 이런 식으로 조리하는 컵라면은 꽤 있지만, 대부분 젓가락으로 구멍을 내라는 식이기 때문에(특히 오뚜기계) 이런 식의 일본다운 배려는 꽤 신선했던.
제조사의 표현을 빌리면 [제트 물버리개 탑재(ジェット湯切り搭載)]...랄까나.
내용물을 볼작시면......
이것이 바로 266g 무게의 비밀.
왼쪽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분말 스프, 액체 스프, 레토르트 조리품 되겠습니다. 그릇 안에 든 거야 당연히 면이고.
즉 면과 스프가 모두 레토르트 파우치 포장되어 있는 것. 뭔가 거창합니다. 음.
이 상태에서, 용기의 조리법에 따르면 '우선 끓는 물에 레토르트 조리품을 1분간 넣어 데워 주세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그대로 해 봅니다.
커피포트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완전밀폐포장면(제조사 표기 그대로)을 개봉하여 용기에 집어넣고 끓는 물을 용기 안쪽 표시선까지 집어넣습니다.
이 상태로 슬쩍슬쩍 저어 가면서 면선을 푼 다음, 조리법에 따르면 곧바로 물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다음 이제는 진짜로 물을 표시선까지 다시 부어주고, 속뚜껑까지 벗겨낸 후 분말 스프, 액체 스프, 레토르트 조리품을 모두 넣습니다. 완성.
이것으로 여느 라면집에 못지 않는, 챠슈(チャーシュー; 볶은 돼지고기 편육)와 멤마(めんま; 절인 죽순)까지 풀패키지로 갖춰진 쇼유 라멘 그대로의 맛을 가정에서. 액체스프를 짤 때는 허연 돈지(豚脂)가 주루룩 나와서 약간 시껍했을 정도로(...), 일본식 라멘의 특징인 풍부한 기름도 그대로.
맛은... 음, 확실히 일본식 라멘을 잘 재현했습니다. 컵라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는 일본식 라멘을 맛있게 먹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후루룩. 챠슈가 두터워서 맘에 들더군요.
나라가 다르니까 당연하긴 하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 역시 미묘하게 그 방향성이 다릅니다.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대개 얼큰함을 기조로 하여 한국식 라면으로의 독자적인 맛깔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은 일본 어디서나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중화요리인 라멘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축소 포장하여 '밖에서 사먹는 그 맛을 집에서 그대로'라는 목표를 잡고 제작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국에서의 라면이란 두말할 것 없이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일본에서의 라멘은 어디까지나 라멘집(ラーメン屋)에서 먹는 쇼유 라멘이나 미소(味噌; 일본식 된장) 라멘을 가리키는 것일 테니까 말이죠. 그래서 특별히 무슨무슨 맛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강조하는 물건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은 라멘집 라멘을 최대한 그럴듯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도 일본식 라멘집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그 맛을 아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이지만, 사실 일본의 라멘은 처음 먹어보는 한국인(특히 한국의 얼큰함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리 먹기 편한 맛은 되지 못합니다. 워낙 느끼한데다 톤코츠(とんこつ; 돼지뼈) 우려낸 국물에 딱히 이렇다 할 강렬한 맛이 안 느껴지고, 어느 라멘에나 안 빠지는 멤마 역시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영 익숙해지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고. 그나마 제일 그럭저럭 먹을 만한 게 쇼유 라멘인데, 이것도 웬만한 한국인은 김치 없이 먹으라면 좀 힘겹습니다(물론 대도시의 비싼 라멘집이 아닌 바에야, 김치를 반찬으로 주는 집은 찾기 힘듭니다. 있어도 유료고).
뭐, 어쨌든 저는 일본식 라멘도 다행히 맛있게 잘 먹는 편에 속하고(아마 김치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이 클 겁니다), 일본 라멘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챠슈와 멤마까지 레토르트를 통해 그대로의 질감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에 약간 감동. 이 정도의 맛에 300엔이라면 확실히 나쁘지 않군요. 음음.
중요 스프가 액체 형태라서, 국물을 끝까지 마셔도 찌꺼기가 거의 안 남아 뒷맛까지 좋다는 데에서 점수 추가. 물 붓는 선이 딱 적절한 수준이라 선이 가리키는 데까지만 부으면 국물이 적절히 남는다는 것도 훌륭(국내 컵라면의 경우, 부으라는 대로 부으면 대개 면발이 국물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게 되죠).
한국의 컵라면들이 거의 대부분 신경쓰지 않고 있는 부분이라서 더욱 인상깊었습니다.
이상 시식기 끝. 내년에 일본 또 놀러가면 저도 대여섯 개쯤 더 사올까 생각중입니다(...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