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드릴러 온라인] 감상 : 내 800빌 내놔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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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모 잡지를 애독해오신 독자라면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미스터 드릴러] 시리즈의 나름 팬입니다. 모 PC게임잡지 필자 하던 시절 리뷰용으로 우연히 접한 PC판 [미스터 드릴러]에 매료된 이래 이후에 발매된 거의 모든 가정용 이식판 드릴러 시리즈를 꼬박꼬박 구입했고, 노량진 모 오락실에 아직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는(...) 드릴러2 아케이드판에는 아직 제 이니셜이 올라있을 것이며, '드릴러 통신'이라는 멋대로 팬코너를 만들어(이 지면, 알고보면 당시 남코 오피셜이었음) 나름 2년여나 꾸준히 연재한 적도 있습니다.
솔직이 시리즈 빠돌이로 들인 시간에 비해 실력은 대단히 천박하기 그지없지만(1000m 노미스까지는 가끔 운 좋으면 합니다. GBA판 드릴러2 올 카드 컬렉션 완료하는 데에는 2년쯤 들었다죠 아마), 어쨌든 팬으로서의 미덕은 충실히 지키고 있습니다. 시리즈 역사상 단 하나 나왔던 OST도 집에 있고, DS판 드릴 스피리츠(...솔직이 런칭 소프트답게 허접하지만)와 심정적 외전인 [디그더그 디깅 스트라이크](이쪽은 더 허접)도 어쨌든 다 사줬으니까 말이죠.

그런 와중에, 대략 지난달쯤 시리즈 최신작(?)에 해당할 [미스터 드릴러 온라인]이 360 라이브 아케이드로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침 주 계정에 1000포인트 정도의 잔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를 준비는 완벽. 드릴러 팬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소식인 겁니다. 드릴러에 대해 알 만큼은 아니 도전 과제 따기도 비교적 쉬울 거고.
그런데 솔직이 시리즈 골수팬이라면 잘 아시겠습니다만, 이미 남코반다이남코 내부에서 프로젝트 드릴러^[각주:1] 팀은 해체된 지 오래라는 게 거의 정설. 프로젝트 드릴러가 시리즈를 전담하던 때와 그 이후의 게임 퀄리티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게임큐브의 드릴랜드와 DS판의 드릴 스피리츠가 극명하게 보여주죠), 솔직이 이번 작품도 퀄리티 자체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뻔히 기존 작품 소스 재활용일 게 눈에 보였고, 이미 게임의 기본 룰 자체는 2편에서 사실상 완성된 상태라 거기서 뭘 더 고치고 어쩌고할 게 없거든요(오히려 잘못 손대면 대박으로 망가지는 게 이 게임). 그냥 원작 보전만 잘 해주고 느낌이나 잘 살려라... 정도랄까. 게임 자체는 워낙 구조가 탄탄하게 잡혀있는지라 그 에센스만 잘 살리면 다운로드 게임으로는 손색은 없죠. 바라는 건 딱 그 정도였습니다.
시리즈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이라, 큰 기대는 안 했다 이거죠. 대략 눈에 보이기도 하고.

드릴러G 이후의 거의 모든 시리즈는 일정 요건을 채우면 히든 캐릭터 '우사기'가 출현하는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없는 듯. ...뭐 이제 와서 뭘 기대하겠습니까

2000m 스테이지가 사라지고 뜬금없이 3000m가 생긴 건 무슨 이유인지 약간 궁금. 게다가 하드웨어 이식상의 문제도 없을텐데 하드 모드의 블록 13개 너비 모드 역시 삭제. ...이거 정식 시리즈 맞냐

어쨌든 드릴러 팬으로서의 의무감으로(라기보단 도전 과제 벌려고) 발매된 날에 과감히 800포인트를 투자해 데모판조차 건너뛰고 구입을 했는데,
이거 실제로 3시간쯤 즐겨보니......

싱글 모드는 팬으로서 용서가 안되고

온라인 모드는 게이머로서 용서가 안된다


....라는 게 일단 현재의 총평. 뭐 패치로 바뀔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이 게임의 정보가 처음 떴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게임 그래픽이 HD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왈가왈부하던데, 뭐 그거야 당연하죠. 이 게임의 메인 그래픽은, 냉정하게 말해 PS판 드릴러G 당시의 도트를 재활용한 거거든요.
그리고 사실 어디까지나 다운로드 게임이자 마이너 이식작인 이 작품의 위치를 생각할 때, 메인 그래픽을 HD로 만들려면 게임 하나 새로 만드는 식으로 전 유닛을 다시 그리고 광을 내야 하는 만큼 그렇게 돈 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팬으로서야 아쉽겠지만, 솔직이 팬 아닌 사람들에겐 별 의미 없습니다. 이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는 이미 정립되어 있는 절묘한 게임 룰에 있고, 그것만 잘 보존하면 반은 성공하는 거니까요.

다운사이징된 스샷이긴 합니다만, 잘 보면 메인 화면의 캐릭터 그래픽은 SD급. HD 모니터로 보면 적당히 뭉갠(...) 도트가 의외로 안습.

그리고 그런 기대에 대강은 부합하여, 싱글 모드는 팬에게는 좀 불만이지만 게임 자체로 보자면 그냥저냥 무난한 퀄리티입니다. 도트고 음악이고 다 재활용(그것도 대부분 G나 드릴랜드에서 따온 것)인데다, 전작들에서 반응이 좋았던 드리스톤 모드 같은 건 거의 안 들어가고 (좀 많이 애매모호한) 아이템 요소가 메인 스테이지에 채택되는 등 밸런스가 좀 묘해진 느낌. 뭐 그냥저냥 즐길 만은 합니다. 아이템 잘 쓰면 싱글 모드는 드릴러 단련자라면 제법 쉽게 돌파할 수 있을 정도랄까(실제로 저는 어제 2시간만에 노멀 3000m 모드와 퀘스트 모드를 돌파).
다만 미묘하게 팬일수록 신경 거슬리는 변경점도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테이지 진행중 리스타트가 불가능해진 점. 싱글 모드 플레이하다보면 '아무래도 이 정도면 클리어가 안되겠다' 싶을 때가 빈번해서 바로바로 리셋을 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다시 시작하려면 무조건 메인 메뉴로 나가서 다시 싱글로 들어가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리스타트가 일시정지 메뉴에서 사라진 건 아마도 시리즈 최초. ...왜 이렇게 만든 거지.


아니, 근데
이런 모든 자잘한 문제점이 한 방에 애들 장난으로 반전되는 진짜 거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미 커뮤니티 등에서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듯합니다만

바로 XBLA 역사상 초유의, 버그에 가까운 완성도의 멀티플레이 모드입니다.

...이 샷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

직접 온라인에서 어젯밤 어느 정도 뛰어본 결과,
현재까지의 잠정적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르죠 또. 이따 집에 가보니까 슬쩍 패치돼 있다거나(...).

• 멀티 모드로 들어갈 경우, Solo와 Tag 모드 어느 쪽을 불문하고 방장 이외의 전 플레이어는 거의 제자리에서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지독한 랙이 걸린다.
• 방장이라 하더라도 게임 진행시 정상 플레이가 힘들 정도의 타임 랙이 걸리는 것은 여전.
• 한국 대 일본 플레이어 대전인데도 극심한 랙이 걸리는 것을 관찰(출시 당시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일본인이었음). 한국 대 한국은 아직 대전해보지 못해 관찰 불가. 일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랙에 대한 성토가 타오르는 것을 볼 때 그쪽도 형편은 마찬가지인 듯.
•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 비교적 정상적인 형태의 대전이 가능했음.
• 덕분에 튕겨나가거나 랙을 못이기고 스스로 접속을 끊는 사태가 빈발해, 정상적인 온라인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실제로 이 게임 플레이어 중 온라인 대전과제를 딴 게이머태그는 극히 찾기 힘듭니다). 계속 진행한다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방장만이 (승리하고 싶지 않아도) 승리하는 기괴한(...) 결과가 연출된다.

...거의 난 이런 걸 지금 800포인트 주고 샀던 거냐 수준의 막장버그.
온라인 멀티플레이가 사실상의 유일한 판매 포인트인 시리즈 신작 주제에 이러면 캐난감.
게임이 원래 막장이면 차라리 안 사고 신경 끊었겠는데, 나름 애정도 있고 시리즈 자체가 훌륭한 물건의 신작이 이러면 팬으로서는 열받는 걸 넘어서 정말 슬프기 그지없을 정도.
프로젝트 드릴러가 없어지고 나니까 모회사가 훌륭한 게임 망치는 꼴이랄까. 거참.

뭔가 태그 모드에서 원호공격 비슷한 것도 있는 듯한데, 써본 적 없어서 모릅니다. ...뭐가 돼야 말이지 --a

이게 도대체 어느 쪽에 책임 소재가 있는 건지는 아직 불명이지만
적어도 반남 측은 게임 실제 제작사인 만큼 1차로 욕먹어 마땅하고(360 게임 한두 번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이미 완성 다 된 XBLA 게임 여럿 밀려있을 정도로 QA 나름 빡빡하게 하며 발매권리까지 쥐고 있는 MS는 더 욕먹어 마땅. 지금 이런 걸 QA 통과시키고 전 세계 라이브 서버에 그대로 올렸다 이거지? 환불은 해줄 거냐?
싱글 모드는 그냥 팬심으로 참고 넘어간다 쳐도, 온라인 모드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더군요. 언제 고칠지는 모르겠지만.
데이터 처리량이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보다 그리 대단히 많다고도 보기 힘든 타입이라, 이건 거의 명백히 페이털 버그.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건지 기대는 되는군요.


...아, 제발 제대로 신작 만들어줄 게 아니면 그냥 추억으로만 남아줬으면 좋겠는데
최근 몇 년간 시리즈 신작이라고 나오는 물건들 중에 이런 식으로 팬들의 좋았던 기억을 제대로 배신 때리는 신작이 종종 눈에 밟히는 게 현실이라서
참 기분 묘하긴 하군요. 이번에 아주 제대로 지뢰 밟았고. 씁.


여담인데, 드릴러의 도전 과제는 대략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수준. 좀 숙련이 필요한 게 몇 가지 있긴 하고, 무엇보다 지금 온라인 도전 과제가 거의 습득불능에 가까운 상태인지라 더더욱 난감하긴 한데.
온라인 도전 과제의 경우, 일본어와 영어 버전의 도전 과제 설명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판별이 안 되는 수준(영어 버전의 경우 '솔로 모드에서 연속으로(consecutive) 10승'이 일본어에서는 그냥 10승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영어 버전이 맞는 표기라면 난이도는 대폭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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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입니다만,
좀 많이 늦은 신고이기는 한데
지난달쯤 인디게임웹진 PIG-MIN에 인터뷰당했습니다. 뭐 서면입니다만.
남의 인터뷰는 여러 번 해봤어도 직접 인터뷰당해보기는 처음이라서 의외로 재미있었달까.
관심이 가신다면 한 번쯤 들러 히트수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냥.


 

1. 드릴러 1/2편의 히트 이후, [미스터 드릴러 G](2001)부터 남코 내부의 드릴러 시리즈 전담 제작팀으로 설립된 부서. 분위기가 정리되지 못한 감이 있었던 1/2편의 세계와 설정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G부터는 본격적으로 캐릭터 관계와 설정을 정립했고, 이 기간에 내놓은 드릴러 시리즈는 대부분이 수작입니다. 이 팀의 로고가 나온 최후의 작품은 시리즈 최고의 역작 중 하나인 게임큐브판 [미스터 드릴러 드릴랜드](2002)로, 이후 남코가 내부 정비 과정을 거치며 팀이 해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프로젝트 드릴러 로고는 이후 나오지 않습니다). 즉 이후의 DS판부터는 프로젝트 드릴러 제작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퀄리티와 신규 요소의 신선도도 확연히 떨어집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