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또 피오생각 카테고리로 무짤방 긴글 하나 투하. 사실은 마감 이전부터 한 번 써두려고 했는데, 마감이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니 이제서야 쓰게 되는군요. 냠.
정권이 바뀌어서 그런지 근래들어 갑자기 흉악범죄 보도가 급증하는 느낌이고, 특히 그 타깃이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부류에 집중되다보니 세간이 받는 충격도 꽤나 큰 것 같습니다. 일단 지금은 좀 잦아드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쪽 사건 관련의 새소식이 올라올 때마다 각종 뉴스 사이트나 포털 게시물에서 분출되는 덧글의 분노 게이지는 여전히 높아 보이는군요.
물론 분노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요. 정직하게 말해서.
이쪽 패턴도 비교적 한결같아서 지존파 때도 그랬고, 유영철 때도 그랬으며, 이번에도 여지없이
사형제는 존치되어야 하며, 오히려 더욱 집행되어야 한다는 식의
모두가 예상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왈가왈부가 또 나오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쪽 논의는 근 십년간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요. 적어도 한국적 시민 레벨에서는. 솔직이 이런 왈가왈부를 보고 있을 때마다, 저는 아직 이 나라가 멀었나보다라는 생각부터 듭니다. 정말로.
이쯤에서 미리 밝힙니다만 저는 사형제 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이번 사안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뭐 저는 개인적으로는 자유주의 입장에 좀 가까운 우파 소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나라에서는 저도 아무래도 극렬좌파 취급받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러려니 해야죠. 저는 대체복무제도 찬성하는 입장이니까요.
...역시나 쓰다 보니까 꽤나 길어져서,
제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는, 사실 살인범의 인권이니 인도주의니 선진사회니 하는 그런 대의명분이나 거대담론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 이유죠. 그쪽에도 이바지는 하니까. 솔직이 제 한 몸 챙겨먹기도 힘들어 죽겠는 요즘 세상인데 남의 인권이니 인도니 그런 거 생각해줄 여유 없습니다. 냉정한 얘기지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사형제가 활발해졌으면 하고 생각하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왜 폐지해야 한다고 보느냐,
사형제가, 그 지지자들이 사형제 존치의 명분으로 내거는 어떤 이유에도 전혀 부합하거나 기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솔직이, 사형제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만 대강 뒤져도 다 나오는 얘기입니다. 거대담론이나 대의명분 이전에, 아예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 이겁니다. 좀 더 저속하게 말하자면, 사형제는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집행자에게도 구경꾼에게도 아무런 실익이 없고 오히려 집단적인 책임 회피와 사회적 마스터베이션 용도밖에 해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제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너무 냉정하게 보는 건가요.
사형제를 유지시키고 흉악범죄자들 나랏돈 들여 꼬박꼬박 목숨 끊어서 과연 뭐가 나아지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보다 보면, 솔직이 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일벌백계를 통한 사회적 계도와 경각? 범죄자들에 대한 처형과 처분이 훨씬 가혹했다고 알려져 있던 구 공산권이나 조선시대에서도 연쇄살인범과 흉악범은 엄연히 있었으며, 전 미국 49개주 중에서 유일하게 사형제가 작동중인 텍사스 주가 타 주보다 흉악범죄율이 현격히 낮다는 통계도 아직 본 적이 없고, 그 일벌백계로는 세계 국가랭킹에서 짱을 드실 중국이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뛰어나냐......라고 물으면 농담으로라도 긍정하실 분은 없을 겁니다. :> 이 나라 내부로만 눈을 돌려도, 과연 10년째 사형제 집행을 하지 않아 일단은 잠재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는 이 나라가 과연 지금에 비해 10년 전이 치안상황이 훨씬 좋으셨느냐......라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10년이면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불과 90년대 중반입니다. 시간이 가면 기억이 휘발되는 법이니까 좋았던 마냥 느껴지는 것뿐이죠. 일단 사회적 계도 자체가 사형제로 부스팅이 되지가 않는다는 게 경험적으로 증명된 거나 다름없고, 그렇다고 잠재적 범죄자에게 경각심을 주느냐...... 역시 범죄심리학이나 연쇄살인 관련 서적만 한두 권 들춰봐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라는 희망사항에 불과함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범죄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동요나 겉핥기 언론보도, 잡히면 사형당할 수 있다는 그 스릴의 심리를 즐깁니다. 잡혀서 징역을 살건 사형을 당하건 그들의 레벨에서는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이건 학교 담 넘으면 정학시킨다는 교칙 내걸어서 담 넘는 학생 수 줄이는 것과는 전혀 별개 차원이니까 말이죠.
흉악범죄자들 먹이고 입히는 세금이 너무 아까우니 죽여야 한다? ...이건 어차피 무단횡단자 많으니까 신호등 없애자는 얘기나 거의 막상막하 레벨이라서 논할 가치도 없긴 한데, 행정부 각 부처가 엄한 데다 들이붓는 쓸데없는 세수가 지금도 여기저기 넘쳐날 텐데 그런 거나 잘 틀어막는 게 훨씬 낫습니다. 줄일 걸 줄여야지. 결정적으로, 흉악범죄자 자체의 양성을 줄일 생각을 해야지 죽여서 머릿수 낮춘다는 발상 자체가 엽기입니다.
이렇게 사형제가 실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제도인 반면, 사형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점은 제법 큽니다. 무엇보다, 되돌릴 수 없는 ─ 즉 절대적으로 불가역적인 형벌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다들 형이 확정되기까지 모든 검증이 완료된 흉악범죄자만 눈에 보이니까 죽여라 죽여라 하는 건데, 적어도 이 나라의 치안 시스템이 완전무결하게 죄 있는 사람만 집어넣는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자부할 게 아니라면 사형제로 인해 무고하거나 적어도 사형을 내리기엔 죄질이 모자라는 자를 처형해버릴 가능성, 절대 제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를 당할 가능성 역시, 그 죽여라 죽여라 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도 절대 제로가 아닙니다. 사실은 이게, 사형제가 가진 진짜 문제점입니다. 집행되고 난 이후엔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것. 만의 하나의 가능성이라고는 하지만, 설령 만의 하나가 아니라 억의 하나라고 하더라도 그 개인에게는 전 세계를 팔아서라도 목숨을 되살 수 있다면 사고 싶을 현실일 것입니다. 그런 겁니다.
멀리 갈 것도 없고, 군사정권 시절에 벌어졌던 숱한 사상살인과 사법살인(작년쯤 결국 무죄가 밝혀진 민족일보 판결이라던가)이 그 증거입니다. 종신형을 살고 있는 무고자라면 나중에 석방시키고 보상금까지 주는 걸로 미약하게나마 보상해줄 수 있다지만(사실 당한 자의 억울함을 풀기엔 이걸로도 엄청나게 부족하겠지요), 사형시켜버리고 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죄는 모두 이 사회가 덮어쓰고 맙니다. 더 나아가, 정말 죽을 죄를 지은 흉악범죄자라고 해도 과연 국가의 이름으로 한 생명을 지워버린다는 게 온당한가라는 윤리적인 물음표는 엄연히 남습니다. 아무리 윤리에 무관심한 개인이라 해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학교에서는 천부인권이고 누구에게나 생명은 소중하다고 가르치는데 말이죠. 범죄자에게 인권은 없다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과연 자신이 어떤 이유나 형태로든 국가로부터 범죄자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실 수 있을지 한 번쯤은 지적 유희 차원에서 시뮬레이션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요? 모르죠, 세상 일. :>
참 매번 이런 류의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 사람들이 표출하는 댓글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인권이란 그 무겁고도 울림 있는 단어가 지나치게 값싸고 경박하게 떠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권위 없애라느니,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해줄 필요 없다느니, 인권이 밥 먹여 주냐느니. 그런 사람들일수록 법이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해지면 쌍욕을 달고 신성한 내 권리 침해라고 목소리 높이는 거, 의외로 제법 봤습니다. 제 편견이라서 그런가요. 보지도 못한 남의 권리라고 그렇게 막말하는 게 아니죠. 자기 권리 소중한 줄 안다면.
같은 의미에서, 솔직이 뉴스 댓글에 지겨울 정도로 넘쳐나는 그 죽여라, 죽여라...라는 함성을 보고 있으면 저는 솔직이 양복 입고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장에 앉아있는 듯한 불편한 감정이 듭니다. 거왜 있잖습니까, 콜로세움에 범죄자들 밀어넣고 사자 몇 마리 풀어놓은 다음에 물고 뜯는 경기. 그걸 즐기면서 법적으로 보호받는 로마 시민들이 닭다리를 뜯고, 그 피바다를 보면서 환호성 지르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건 좀 도가 지나친 걸까요.
사형제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국가가 대행하는 복수극에 불과하고 세상의 모든 복수가 그렇듯, 결국 누구에게도 이익이나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현실은 똑같거든요. 아, 딱 한 부류에게는 이득이 있겠네요. 그걸 멀거니 신문이나 TV로 감상하면서, 심리적 자족이나 자극(혹은 재미)을 기대하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죠. 어디까지나 방관자이자 시청자에 불과한, 솔직이 가해자나 피해자 그 어느 쪽에도 무관계한 우리들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가 사형제를 결국 '사회적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솔직이, 흉악범죄자가 사형된다고 해서 이득보는 사람이나 단체나 기관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보는 우리들만 흥미로울 뿐이죠. 아닙니까.
물론, 때로는 복수도 필요합니다. 인류 최초의 형벌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적 복수에서 시작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중세사회가 아니라 (적어도 스스로들 자칭하기로는) 문명사회인 만큼 복수의 방책도 훨씬 공정하면서도 세련되어져야 할 것이고, 억에 하나 발생할 악용이나 오용에 대한 대책도 당연히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잘못이 저질러졌을 때 되돌리거나 보상해줄 수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굳이 사형시키지 않아도 흉악범죄자로 확정되면 죽을 때까지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만으로도 실효는 충분합니다. 이걸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적어도 대부분의 인간에게 있어서 찰나의 죽음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영원한 고독입니다. 인권이 어쩌고 하기 전에, 제가 보기엔 이쪽이 더욱 잔혹하다고 보는데, 아닌가요.
사실 알고 보면, 한국은 어떤 의미로 봤을 때 복수심리로 가득찬 사회입니다. 사람을 죽고 죽이는 것만이 복수는 아닙니다. 지난날 못 배우고 못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악착같이 돈과 학위에 핏발을 세우고, 나아가 그 강박을 자식 세대에까지 치열하게 강요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배운 자식 세대가 결국 다음 세대에까지 그 강박을 대물림하는 것. 학교에서는 한 줄로 줄세우는 데 여념이 없고, 그 줄에서 밀려나지 않느라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짓밟으며 외줄 사다리를 기어올라가고, 그렇게 사다리 끝까지 올라왔는데 정작 사회라는 편안한 소파의자가 극단적으로 부족해서 이 의자 좀 더 많이 생산해 달라고 TV에까지 나와서 울부짖고...... 그 모두가, 대상이 특정되지 않을 뿐이지 결국은 복수심리입니다. 그 심리와 기제가, 결국 이런 만만한 꺼리를 앞에 두고는 사형제 작동 촉구라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정말 더 시급한 건 그게 아닌데 말이지요.
이 좁고 답답한 세상에서, 범죄자가 홀로 스스로 미쳐서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많은 범죄학 서적이 지적하듯이 결국 범죄자는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이 사회도 적지 않게 일조하고 있고, 무력화된 소단위 공동체나 도시화를 통한 무관심과 물신주의, 수많은 사회 시스템의 불합리와 문제점이 결국은 사회의 암세포라 할 수 있는 흉악범죄자를 낳습니다. 솔직이 제가 이렇게 길게 쓰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아는, 원론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범죄자를 사형이라는 불가역적인 수단으로 단죄하는 순간, 그가 저지른 범죄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한정되고, 형벌이 끝남으로써 국가와 관계기관과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멋지게 면죄부를 받고 맙니다. 물론 마음이야 편하고 속시원하겠지요.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결국 그런 범죄자를 만드는 이 사회의 문제를 우리가 바라보고 반성해야 하는 것인데, 사형제는 그런 성찰이나 반성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언론에서도 많이 떠들었다시피 이번 사건에서도 용의선상에 오른 용의자가 초동수사 실패로 오히려 수사망을 벗어나 백주대낮에 활보하고 다니는 헛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는데, 그럼 그 수사를 책임진 경찰의 문제와 시스템을 재검토하는 게 먼저이지 범죄자를 사형시키면 그 시스템이 알아서 보완된답니까. 해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프로파일러나 범죄심리학자, 과학수사 재원을 신경쓰고 과연 사회가 범죄를 낳은 측면은 없는지 스스로 자성하고 그 대안을 도출하는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져야 정상 아닐까요.